접시닦이의 회고
| by 이상민 CPA
내가 일을 하다 직원들의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한 분 있다. 내가 접시를 닦던 나의 첫 직장인 컨트리 클럽의 주방장으로 계시던 분이다. 나의 미국 이민 생활은 1974년 버지니아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민 온 가정은 누구나 어려울 때여서 자녀들이 방과 후 일을 하지 않고는 생활이 매우 힘든 때였다. 우리집도 마찬가지여서 나도 버지니아 어느 부촌에 있는 컨트리 클럽 주방에서 생에 첫 직장의 막을 열었다. 미국 private golf club에 한국 사람이 주방장이었다는 것은 그 당시 대단한 일이다. 그 주방장님을 난 항상 아저씨라 불렀으니까 이제부터 그 분을 아저씨라 부르겠다. 그 클럽의 웨이터, 웨이트레스, 버스보이까지 모두가 백인이었는데 주방의 도우미만큼은 모두가 아르바이트하는 한국 학생들이었다.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알고 있던 이민 선배인 그 아저씨가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정말 어렵고 힘든 보스였다. 일에 대해 철저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심하게 야단을 치는데 입이 걸기 때문에 반드시 욕으로 사람의 마을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그저 욕인데 화가 날 때는 전체 문장이 욕으로 표현된다. 꼭 맞는 말을 어찌나 욕만 갖고 그렇게 잘 표현하는지 공부를 하셨으면 대단한 어학 실력을 갖추셨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던 어느날 같이 일하던 형이 화장실이 급해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고 했다. 워낙 큰 주방이라 접시를 혼자 닦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 사정이 그렇다니 얼른 다녀오라 하고 정신없이 일하다가 그만 커피머그가 담겨있던 트레이를 통째로 놓치고 말았다. 내가 있던 곳 오 미터 앞에서 이 광경을 그 무서운 아저씨가 다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주방 바닥에 머그 25개가 널부러져 모두 깨지고 말았다. 다급해진 난 일단 기계 스위치를 끄고 깨진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감히 고개들 생각도 못하고 주우면서 계산해보니 물어낼 머그 값이 4 주치 주급 갖고도 모자란데다 부모님들까지 포함해 욕들을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화장실 다녀온 형이 보고는 자기가 주울 테니 어서 가서 아저씨께 용서를 빌라한다. 용기를 내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계시던 아저씨가 안 보이는 거다. 화가 너무 많이 나셔서 사무실로 가신 모양이다. 사무실로 찾아가 모기만한 소리로 “아저씨” 하고 불렀더니 나를 쳐다보시면서 “상민아! 혹시 너 내 신문 못봤냐? 이 신문이 어디 갔지?” 부드럽게 한 말씀하시고는 아예 주방 밖으로 뛰어나가셨다. 순간 나는 알았다. 열심히 일하다가 저지른 실수는 용서하신다는 걸. 안도의 숨을 쉬면서 남이 볼까 눈물을 훔치고는 마음을 먹었다. 더욱 열심히 일해야지. 그 아저씨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멀리 이사했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얼마 전 버지니아를 갔을 때 찾아뵈려니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쓸쓸했다. 직원들의 일을 검토하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실수가 눈에 띌 때마다 내 성질대로 소리지르고 야단치고 싶지만 그 때마다 그 아저씨가 인자하게 신문을 찾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이 내가 첫 직장에서 접시닦으며 얻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가치있는 직장 교육이 아닐까? 하늘에서도 지금까지 교훈을 주시는 아저씨를 생각하며 즐겁게 일을 하다보면 매일 쌓이는 스트레스가 다소 해소되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