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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ec

흔들리는 것들을 넘어서

by 홍태명 CPA

 

듣기만 하여도 몸이 움추려드는  찬바람 소리에 발걸음이 동동거려집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그 동안 무성한  잎들로 감추어졌던 새들의 집만  덩그렇게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아직도 새들이 살고 있을까?  엉성한 가지들만 회초리처럼 남은 빈 나무들의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컴퓨터의 바탕화면은  아직도 여름입니다. 지난 여름의 시원한 자랑입니다.  바깥의 찬 바람은 잊은 채 흰구름이 멀리 드문 드문 떠 있는 파아란 하늘입니다. 그 한가운데 무지개색  낙하산이 그림처럼 떠 있습니다.  낙하산 끝에 제가 앉은 자세로 매달려 있습니다.   무섭지도 않나 봅니다. 검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오른 손을 번쩍 쳐들고 있습니다.  공중에 뜬 발 밑은 짙푸른  바다입니다. 꽤 깊어 보입니다.  약간의 파도가 흰 색을 띄고 수평선은  화면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뻗어있습니다.  육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평상시의  저로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굉장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입니다.  죽기 전에 꼭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나 만의 버켓리스트중 한 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혼자   흐뭇해하곤 합니다. 지난 여름의 훈장인  와이키키 해변의 파라세일링 사진입니다.

한국학교의 전국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여름 하와이에 갔습니다.  덴버, 디트로이트,  씨애틀,  보스톤, 올란도, 샌프란시스코, 워싱톤DC등 매년 새로운 도시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에 참석하지만 강의계획표에 따라 여러 교실을 다니다 보면 제대로 관광 한 번 못해보고 피곤한 채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하와이까지 와서 바닷물에 발 한번 담그지 않고 가면 되겠느냐고 흥분해하면서 무엇인가를 꼭 하자고 우리를 부추겼습니다.  점잖은 척에 익숙한 저는 앞장서서 하는 일에는 언제나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누군가 무엇을 하면 따라서 하는 일은 잘 합니다. 학술대회가 끝나기 이틀 전 플로리다에서  오신 신선생님이 내일 밖에 시간이 없으니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날 다녀오신 분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비용도 적당한 파라세일링 프로그램을 그 밤에 우리는 싸인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오전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하고 마침내 배를 탔습니다.  열 두명이 탄 배는 생각보다 바다 깊은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그룹은 일곱 명이었는데 남자 선생님은 저 혼자였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저는 물에 겁을 냅니다. 그러나 이미 비용을 지불했으니 무를 수도 없습니다.  표정이 굳어진 채 드디어 바다 한 가운데 도착하였습니다. 육지는 저 멀리 까마득합니다. 두 명씩 한 조가 되어 낙하산 고리에 몸을  연결합니다. 배가 출발하면서 배에 감겨져 있던 낙하산 줄이 자동으로 풀립니다. 배가 속도를 내면 낙하산은 두 사람을  싣고 서서히 하늘로 올라 갑니다. 일 천 피트 정도에 이르면 얼마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장 멋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줍니다. 매우 재미있다는 듯 아래를 보고 답례를 합니다.

밑에서  앉아 차라리 차례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는 저는 은근히 불안합니다. 낙하산 비행을 마치고 배로 내리는 사람들에게 다 같이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은 그 순간 우리 모두의 영웅이 됩니다.  먼저 매 맞은 자의 여유가 부럽습니다. 과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끈은 튼튼한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두려움 가운데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제 차례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합니다. 눈을 감고 낙하산에 몸을 맡깁니다. 점점 몸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뒤로 올라가는 중이라 생각보다는 무섭지 않았습니다.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정말 까마득합니다. 현기증이 납니다. 같이 타신 선생님은 메릴랜드에서 오셨는데 높은 곳이 싫다고 하셨습니다.  낯빛의 흰색이 역력합니다. 빨리 내려 가고 싶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의 공포를 없애드리려고  많은 질문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그 바람에 저는 무서운 줄도 몰랐습니다.

그 때 문득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전 올라오기 전에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습니다.  위에 올라가서 두려우면 멀리 있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옆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며 저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저 멀리 아주 멀리 산들이 나지막하게 보입니다. 하와이 섬들이 보이면서 비로소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졸고 있는 듯 아주 평온한 모습입니다. 도시는  조용하고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도 않습니다. 한 폭의 풍경화 속에 제가 앉아 있는 듯하였습니다.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은 없습니다. 온 지구의 평온함이 제 마음에 넘쳤습니다. 제가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낮은 곳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손으로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멀리 바라보니 전체가 보이고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이 세상의 삶은 불안과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열심히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보장되는 것이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잡아 줄 움직이지 않는 튼튼한 기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지구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은 그치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주가는 매일 요동을 칩니다. 세상을 자세히 바라볼수록 마음의 두려움은 오히려 증폭됩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거기에 인생의 큰 그림이 보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도성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바라보았던 곳입니다.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으며 또한 땅에서는 나그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보았던 본향은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이었습니다. 그 곳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흔들리는 것들을 넘어서 멀리 바라보는 것은 인생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삶의 평온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영원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지혜입니다.

해변으로 들어오는 배에서 우리 모두는 개선장군들이었습니다.  두려웠던 흔적들은 깨끗이 사라지고 저마다의 무용담이 이어졌습니다.  흔들리는 배에서 육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육중한 무게감이  온 몸으로 전달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흔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 바다를 돌아보니 더욱 선명한 하와이의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끝없는 수평선을 따라 영원을 향한  저의 가슴도  점점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장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