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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Sep

Reconciliation (화해/조화/일치)

by 이정훈 CPA

We accountants do many reconciliations for our job. Life also demands many ‘reconciliation’ jobs. Let’s handle them with wisdom gained through our job experience.

일전에 2 -3 일 은 족히 걸릴 Account Reconciliation 작업을 2년차 회계사에게 맡겼습니다. 오래 집중해야 하는 일을 직접하는것이 이제는 부담되기도 했지만, 회계사에게 Reconciliation 작업은 평생 할 일이고 앞으로 더 힘든 일들을 할수도 있기에 경험 쌓으라고맏겼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회계사 한분은,  요즘 회계사들은 Reconciliation 작업을 잘하려하지도 않고 잘 할줄도 모르는것 같다고  하던데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한 표현인것같습니다. 인생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끊임없는 Reconciliation 과정의 연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너무 회계사적인 생각일까요?

어려서 주위의 사물이 모두 낮설어 보일때, 우리는 나와 주위의 낮선 환경을 어떻게든  Reconcile 하려고,  끊임없이  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생각해 보는 과정을 겪었던것 같습니다. 조금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면, 새로운 선생님, 교실, 급우들 , 이 모든 낮선 것들과 나를 Reconcile 하는 끊임없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성장 과정이었고, 그 과정은 지금도 계속 되는것 같습니다.

회계사로서 Reconcile 해야 할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은행 잔고도 Reconcile 해야하고, 고객이 생각하는 재무제표와 회계사가 보는 재무제표의 차이도 Reconcile 해야하고, 법인세 신고를 할때도 제일 먼저 장부와 법인세 보고서 상의 차이를 Reconcile 해야합니다. 하물며 우리 인생에서 Reconcile 해야 할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가족 관계, 이웃 관계, 친구 관계,  어제의 나의 생각과 오늘의 나의 생각의 차이, 젊어서의 내 육체와지금의 육신과의 차이도 끊임없이 Reconcile 을 해나가야 합니다. 며칠 전에는 얼굴을차 문 모서리에 부딪쳐 얼굴에 상처가 났었습니다. 예전의 내 시력과 운동신경과 모든 것들이 예전과 같지 않은데 내 머리는 이런 차이를 모르고 예전 처럼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린 때문이었습니다.

회계사 뿐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이런 저런 Reconciliation 을 열심히 해나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언어학 중에서도 의미론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에 따르면 의미는 오랜 역사를 통해  철학자들을 괴롭혀온 문제였고, 언어학에서도 골치 아프고 발전이 더딘 학문 분야가 의미를 연구하는 의미론 이라고 합니다.  그는 의미가 무었이냐고 파고 드는 철학적 접근이 문제 해결에 별도 도움이 안된다고 하면서, 차라리 의미에 관한 현상들을 연구하는 접근법이 바람직하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숫자를 연구하는데 숫자 자체의 의미만 파고 드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관련된 현상들을 연구함으로써 수학이 발전했듯이 의미도 의미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의 현상들을 연구하는 것이바람직한 접근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생도 인생의 의미가 무었일까 직접 매달리는 것보다는 (보통 우리 인생이 그럴 여유를자주 주지도 않지만)  인생의 현상들을 끊임없이 Reconcile 해보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보다 잘 드러내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골치 아픈 Reconciliation 작업이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겠지만, 이런 일들이 나의 인생에지혜를 주기 위한 훈련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복잡하게 엉킨일들이 잘 Reconcile 이 되었을때 느끼는 크고 작은 기쁨들을 나의 인생에도 열심히 적용을 해보려합니다.

하지만 Reconciliation 이란 작업은 꼭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문제에 정면 도전하여 수천년 동안 변함없는 희망의 커다란 빛을 발하는 분들도 20대 청년 시절에  Reconciliation 을 정말 치열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6년 동안 치열하게 목숨 걸고 사유한 것도 나의 눈, 귀,코, 혀, 몸, 머리 등 신체 기관을 통해 인지한 나와,  이런 감각과 사고를 통해 인지한 나가아닌 참 나와의 차이를 Reconcile 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 또한 로마 식민 지배하의  유다와 하늘나라와의 괴리를,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나와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사이의 그 넓은 간극을  Reconcile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치열한 20대를 겪으신 것이 아닐까요.

지극히 회계사적인 생각들이었습니다.